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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시계 디자이너 자비에 페레누와의 인터뷰

한국과 스위스의 장인정신을 어우르는 철학과 디자인, 관념, 형태, 프로세스의 결합이라는 개념을 담아낸 작품들을 선보이는 전시 ‘다이얼로그(Dialogue)’가 서울 평창동에 위치한 매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1월 5일부터 한 달간 열리는 이 전시는 스위스의 럭셔리 워치 디자이너이자 스위스 로잔 예술대학교(ECAL)의 교수로 재직중인 자비에 페레누(Xavier Perrenoud)와 서울에서 활동 중인 공간 및 오브제 디자이너 칼슨 홍(Carson Hong)이 스위스 로잔에서 나눈 양국의 장인정신에 대한 대화로부터 시작되었다.


한국의 미와 스위스의 정신을 바탕으로 조선시대 백자 달 항아리를 제해석한 각 작품은 자비에 페레누, 칼슨 홍 그리고 도예 명장 김홍배의 손길과 세라믹 3D 프린팅 기술이 결합하여 탄생했다. 특히 이번 전시는 2023년 한국-스위스 수료 60주년을 맞아 공식 기념 이벤트로 선정되었으며, 한국도자재단과 이도, 주한스위스대사관의 후원으로 개최된다.


다이얼로그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백자 달 항아리. © Bahc ShinYoung



스위스 시계 산업의 중심지인 라쇼드퐁 출신의 자비에 페레누는 그곳에서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며 럭셔리 시계 디자이너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루이 비통, 라도, 위블로, 제라드 페리고, 포티스, 아민 스톰 등 유명 브랜드와도 협업한 바 있다. 레뷰 데 몽트르 코리아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지난 1월 초 한국을 방문한 자비에 페레누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비에 페레누
자비에 페레누

RDM 스위스 시계 사업의 중심지 중 하나인 라쇼드퐁에서 자라면서 시계 산업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든 때는 언제인가?

Xavier Perrenoud(이하 XP) 우리 가문은 대대적으로 스위스에서 여러 기계들을 생산하는 매뉴팩처를 운영하고 있다. 거기에는 시계관련 부품들도 포함되어 있기에 시계 산업을 눈앞에서 보고 자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시계에 관련된 일을 할 계획은 없었다. 학업을 거의 마치고 취업한 첫 회사가 시계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시계는 전통과 최첨단 기술력을 동시에 활용할 수 있는 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많은 흥미를 느꼈고, 지금까지 시계 디자인에 많은 열정을 기울이고 있다.


RDM 이번 전시회는 한국의 전통적인 조선시대 백자 달 항아리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같은 예술 작품과 기계식 시계를 디자인하는 과정에는 유사점이 있는가?

XP 백자 달 항아리와 기계식 시계는 외관상으론 아무런 유사점이 없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작 과정이 매우 유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계를 디자인한 것과 동일하게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백자 달 항아리가 어떤 재료와 방식으로 제작되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공부와 연구를 했다. 사용할 소재를 정한 후에는 한국의 전통적인 공예 기법을 활용하는 동시에 최첨단 현대 기술 중 하나인 3D 프린팅을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백자 달 항아리의 중심부는 3D 프린팅으로 구현하며 더욱 입체적인 디자인을 만들어냈다. 이렇듯 기계식 시계를 디자인하는 것과 동일하게 장인 정신과 최첨단 기술을 적절한 밸런스로 활용하며 전통과 미래를 통합해낸다.


다이얼로그 전시회에서 만나볼 수 있는 백자 달 항아리. © Bahc ShinYoung



RDM 시계 브랜드들과 일 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은 무엇인가?

XP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먼저 브랜드가 원하는 방향성과 아이디어를 귀담아듣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협업하는 브랜드의 헤리티지와 전통, 아이덴티티 그리고 현재 추구하고 있는 방향성을 파악해야만 탄탄한 베이스가 생성되기 때문이다. 또한 각 브랜드가 소유한 아카이브만큼 브랜드만의 개성을 알려주는 것이 없기 때문에 항상 아카이브도 같이 볼 수 있는지 요청하고 있다. 디자이너는 마치 요리사와 같다. 브랜드와의 소통을 통해 필요한 주재료를 모으고 이를 가장 완벽한 요리로 만들어줄 수 있는 레시피를 구상하는 것이 디자이너의 일이다.


자비에 페레누의 스케치
자비에 페레누의 스케치.

RDM 좋은 디자인을 정의하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XP 나에게 좋은 디자인이란 시장이 원하는 것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예측한 디자인이다. 미래지향적이고 파격적인 디자인도 좋지만 너무 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적당한 밸런스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더불어 하나의 제품을 보았을 때 디자이너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나타나면 시간이 지나고 다른 이의 손에 완벽하게 재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비에 페레누가 디자인한 워치.



RDM 지속가능성은 모든 산업에 걸쳐 매우 중요한 키워드로 자리잡고 있다. 지속가능성은 디자인 과정에서 어떤 영향력을 펼치고 있는가?

XP 기계식 시계는 그 자체로도 매우 지속가능한 제품이지만 디자인을 할 때에도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소비자들에게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을 수 있지만, 시계 산업에서 지속가능성은 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디자이너들은 현재 구상하고 있는 제품에 사용할 재료의 원산지와 어떤 기술력을 활용해야 하는 지까지 고려하고 디자인을 한다. 한 가지의 예를 들자면, 특정 디자인을 구현하기 위해 꼭 사용해야 하는 기계와 기술이 있는데 이를 활용하는 것이 너무 많은 에너지량과 이산화탄소 등을 배출하게 된다면 이를 대체할 수 있는 대안을 생각해야 된다. 또한 브랜드가 정해준 주재료보다 더욱 지속가능한 재료가 있다면 이를 추천하고 설득하는 것도 디자이너의 몫이다.


RDM 디자이너로서 롤 모델이 있는가?

XP 스위스 시계 산업의 역사에는 존경스러운 시계 디자이너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집중하기보단 모든 산업의 황금기였던 1960년대와 1970년대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 자유분방한 에너지가 넘쳤던 이 시기에는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디자인의 시계가 많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의 반응을 살피기 위한 론칭도 많았기 때문에 브랜드들은 어떤 점을 보완하고 개선해야 하는지도 단번에 알 수 있어 배움의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럭셔리 기계식 시계 산업에서는 실험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 많이 어려워졌다. 특히 너무 생소하고 실험적인 디자인은 소비자들에게 거부 반응을 일으킬 수 있고 이를 통해 브랜드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등 수 많은 리스크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다. 디자이너들이 덜 창의적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브랜드들이 리스크가 적은 안정적인 제품을 선보이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Editor: Ko Eun B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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