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생티미에에 위치한 론진 매뉴팩처는 시계 부품의 상호교환성 분야에서 선구적인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무브먼트 내부에 쓰이는 부품을 정밀하게 통일해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으며, 필요한 경우에는 플레이트를 조율할 필요 없이 교체까지 가능하게 했다. 미국의 산업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덕분에 스위스 시계 산업에 커다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론진 매뉴팩처는 이러한 혁신 덕분에 미국 시장을 정복하는 일에 나설 수 있었다.
스위스 브랜드의 서부 개척
론진은 매우 이른 시기인 1880년경부터 북미 지역에 시계를 수출했다. 가장 오래된 증거로는 1884년에 작성된 기록이 있는데, 당시 북미 지역에 스위스 시계를 처음으로 유통한 회사들 가운데 하나인 제이 유진 로버트 앤 컴퍼니(J. Eugène Robert & Co., 뉴욕 메이든 레인 30번지)가 아가시(Agassiz)와 론진의 칼리버를 수입해 미국에서 미국산 케이스에 장착한 후 판매한 것으로 나와 있다.
1895년부터는 비트나우어(Wittnauer, 메이든 레인 19번지)가 공식 수입 업체로 변경되었다. 비트나우어는 플레이트와 다이얼에 일일이 자사의 이름을 새겼고, 심지어 론진이라는 이름 옆에 성처럼 나란히 쓰기도 했다. 이렇듯 론진은 일찍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한 덕분에 1891년부터는 미국에서 사용되는 레일로드 시계를 위한 무브먼트를 개발하게 되었다. 결국 1890년대 말에는 레일로드 시계 분야에 론진이 정식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900,000’이라고 적힌 대량생산 시계를 통해 매우 고급 사양인 크로노미터 무브먼트 2개를 선보였다.
레일로드 시계에 사용된 론진의 빈티지 칼리버 리더 익스프레스
각각 ‘익스프레스 모나키’와 ‘리더 익스프레스’라고 명명된 이 칼리버들은 놀라울 정도로 많은 타기업 라벨을 붙인 채로 판매되었고, 때로는 론진 로고도 없이 판매되었다. 론진은 레일웨이라는 명칭을 무브먼트 이름 옆에 추가하려고 했지만, 미국 매뉴팩처인 듀버 햄든 워치 컴퍼니(Dueber–Hampden Watch Company)가 자사의 입지를 지키기 위해 이미 레일웨이라는 용어의 권리를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상징적인 2개의 무브먼트
익스프레스 모나키 칼리버는 17개의 루비를 사용한 것과 23개를 사용한 것이 있고, 사이즈 또한 18리뉴와 20.5리뉴가 있다. 큰 모델은 1893년부터 1908년까지 제작되었고, 작은 것은 1902년부터 1928년까지 제작되었다.
리더 익스프레스의 경우에는 루비를 17개 또는 19개를 사용했는데, 5가지 포지션에서 조율이 가능했고, 사이즈는 18리뉴 또는 19리뉴다. 이 두 칼리버의 구조는 매우 다르지만 둘 다 놀라운 수준의 마감과 정확성을 자랑한다. 이 칼리버들 덕분에 론진은 당시 스위스 시계 회사들에 비교적 폐쇄적이던 북미 지역 철도 회사의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는 무브먼트의 시각적인 면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 점에서 론진은 흠잡을 데가 없었다. 특히 3/4 플레이트에는 물결무늬 장식을 새겨놓아 시각적으로도 매우 뛰어났다. 하지만 이렇듯 뛰어난 디자인이 모두 우연에 의해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섬세한 조율을 가능하게 해주는 나사형 크라운을 살펴보자. 중심에서 벗어난 위치에 배치한 독창적인 디자인에서도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고자 하는 고심이 엿보인다. 정확성은 오늘날 크로노미터에 버금간다. 3/4 플레인 플레이트로 제작된 칼리버를 선보이는 것 자체가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다. 론진은 매번 무브먼트 구조를 바꿔서 다양하게 제작하는 흔치 않은 적응력을 보였다.
1920년 이후 론진은 레일로드 시계에 쓰일 또 다른 무브먼트를 개발했다. 이후 익스프레스 모나키 칼리버와 리더 익스프레스 칼리버는 둘 다 미국의 철도 회사에서 사용된 ‘진귀한’ 스위스 시계로 남아 시계 업계의 전설이 되었다. 이는 론진의 국제적인 역량이 북미 시장 진출을 통해서 증명되었던 것인데, 유럽의 매뉴팩처로서 미국의 서부를 개척한 흔치 않은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의 레일로드 시계애호가들은 론진이 제작한 칼리버의 뛰어난 품질을 찬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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