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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디렉터 스테판 벨몽과의 인터뷰

1833년부터 시작된 예거 르쿨트르의 역사는 창립자 앙투안 르쿨트르가 워치메이킹의 모든 기술을 한 지붕 아래 통합한 진정한 매뉴팩처를 스위스 발레드주에 설립하면서 확고한 기틀을 다졌다.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한 예거 르쿨트르의 헤리티지 디렉터 스테판 벨몽을 『몽트르 코리아』가 직접 만나 브랜드의 역사와 리베르소 등의 상징적인 컬렉션에 관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디렉터 스테판 벨몽

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디렉터 스테판 벨몽

MK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번 방문의 이유가 궁금하다.  

Stéphane Belmont(이하 SB) 맞다. 이번이 처음이다. 나도 이렇게 중요한 시장인 한국에 왜 이제야 처음 오게 되었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한국 팀, 특히 부티크 팀을 만나기 위해서다. 현재 나는 예거 르쿨트르에 대해 알고 있는 내용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번에 내가 한국에 온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한국 팀은 이미 예거 르쿨트르와 우리 제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을 테지만, 내가 그들의 스토리텔링을 더 풍부하게 만들어 고객이 부티크에 방문했을 때 고객이 모르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유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MK 당신의 커리어를 보면 프랑스 브장송에서 태어나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까지 모든 것이 시계와 연관이 깊은데, 수많은 브랜드 중에서 예거 르쿨트르에서 이로록 오랜 기간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SB 나는 브장송에서 태어났고, 이후 스위스로 거처를 옮겨 로잔 연방 공과대학교에서 공부를 한 엔지니어다. 공부하면서 의료 분야부터 시계 분야에 이르기까지 여러 회사에서 인턴십을 했는데, 1991년에는 리베르소 60주년 기념 전시회를 위한 작업을 함께했다. 리베르소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워치메이킹과 다양한 컬렉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던 전시였다. 이때 나는 예거 르쿨트르의 워치메이킹에 정말 큰 감동을 받았다. 이후 IWC와 랑에 운트 죄네, 예거 르쿨트르에서 일했는데, 그중 예거 르쿨트르의 역사가 가장 인상 깊었다는 점과 다른 브랜드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모델을 보면서 그 ‘다양성’에 깊이 매료된 점 등이 그 이유다.

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디렉터 스테판 벨몽

예거 르쿨트르 헤리티지 디렉터 스테판 벨몽

MK 예거 르쿨트르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방대한 브랜드의 아카이브에서 가장 흥미롭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다면?

SB 결론부터 말하면, 예거 르쿨트르는 손목시계를 디자인한 최초의 워치메이커 중 하나라는 점이다. 까르띠에의 아트 북 『까르띠에 탱크 워치(The Cartier Tank Watch)』를 보면, 에드몽 예거(Edmond Jaeger) 덕분에 르쿨트르가 어떻게 까르띠에를 위해 일하기 시작했는지 잘 나와 있다. 프랑스의 워치메이커인 에드몽 예거는 까르띠에를 위한 새로운 얇은 무브먼트를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그렇게 얇은 무브먼트를 만들고자 하는 워치메이커가 없었고, 이에 에드몽 예거는 스위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Jacques-David LeCoultre) 를 만나 울트라 씬 무브먼트를 만들게 되었고,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까르띠에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까르띠에가 최초의 산토스를 디자인했을 때 그들은 예거 르쿨트르 무브먼트를 사용했으며, 그 후 우리는 까르띠에와 함께 탱크를 개발하며 손목시계를 디자인한 최초의 워치메이커 중 하나가 되었다. 또한 까르띠에를 위해 최초의 직사각형 시계를 만들기 시작한 경험 덕분에 이후에 듀오플랜과 리베르소를 개발하게 되었다. 오늘날까지 진정으로 성공한 사각형 시계는 까르띠에의 탱크와 산토스 그리고 예거 르쿨트르의 리베르소뿐이다. 전통적인 워치메이커들은 직사각형 시계로 성공한 케이스가 없기 때문에 최고로 우아한 손목시계인 리베르소를 만들어낸 예거 르쿨트르를 나는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리베르소 트리뷰트 스몰 세컨즈

리베르소 트리뷰트 스몰 세컨즈

MK 리베르소의 가장 인상적인 컴플리케이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SB 예거 르쿨트르는 컴플리케이션으로 유명하지만, 리베르소는 그 자체만으로도 매우 인상적이기 때문에 컴플리케이션이 무조건 필요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때로 사람들, 특히 남성들은 메커니즘의 아름다움을 즐기고 싶어한다. 멋진 디자인을 갖는 것도 좋지만 기계에 담긴 기술과 미학까지 즐기려는 것이다. 리베르소에 컴플리케이션을 결합하는 일은 굉장한 도전이다. 사각형 케이스에 맞도록 컴플리케이션을 소형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베르소는 이 같은 단계를 뛰어넘어 컴플리케이션을 보여주거나 보여주지 않을 수 있는 경지까지 나아갔다. 한쪽 면은 매우 순수한 워치 그 자체이지만, 크로노그래프, 미닛 리피터 등 메커니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을 때 케이스를 뒤집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래도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컴플리케이션은 리베르소의 개인화다. 개인화를 통해 그냥 리베르소가 아니라 나만의 리베르소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만의 창조물, 나만의 시계라는 사실은 정말 멋진 일이다.    

리베르소 트리뷰트 스몰 세컨즈의 제작 과정.

리베르소 트리뷰트 스몰 세컨즈의 제작 과정.

MK 오랜 기간 시계 업계에 몸담아온 경험에 비추어볼 때 지금은 위기인가, 기회인가?  

SB 위기는 항상 기회를 동반한다. 과거를 살펴보면 리베르소와 칼리버 101, 애트모스는 1930~1931년경에 만들어졌는데, 이는 1929년의 경제 대공황 이후였다. 위기 상황에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 왜 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경제가 호황이고 주식 시장이 활황이며 모두가 행복할 때는 누구든 어떤 것도 팔 수 있다. 사람들이 마음 편하게 매장에 들어와서 자유롭게 구매하기 때문이다. 항상 사람들이 붐비기 때문에 직원들은 회사에 대해 배우는 데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그저 판매만 할 뿐이다. 그러면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망각하곤 한다. 반면에 위기가 닥치면 판매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고, 설명해야 하며, 사람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것에 대해 확신을 갖도록 해야 한다. 사람들은 세상이 불안하다고 느낄 때는 클래식 시계를 구입하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위기가 닥쳤을 때는 항상 원칙으로 돌아가서 예거 르쿨트르가 성공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핵심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덜 불안하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좋다. 예거 르쿨트르는 위기가 닥쳤을 때 항상 그것을 타개하며 나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세상이 불안할 때 오히려 더 나은 시장 점유율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 해도 나는 세상이 평화로운 게 더 좋다.

MK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만나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

SB 오늘날의 우리를 만든 사람들인 자크 다비드 르쿨트르와 에드몽 예거를 만나보고 싶다. 상상만 해도 정말 멋진 일이다. 20세기 초의 파리로 돌아가서 그들도 만나고, 특히 파리에서 열린 아르데코 박람회도 가보고 싶다. 그렇지만 제2차 세계대전은 건너뛰고 싶다.

Editor : Lee Eun Ky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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